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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6-28 00:00
<b>우리양계의 희망-양계인 2세들</b>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652  

<신PD의 양계산책 13>

 

다한영농조합법인을 알게 된 것은 일년전 이맘때 쯤. 협회전무로 취임한지 2달 정도 지났을까? 이들이 서울근교 여름 단합대회에 초청을 했다. "조합원 모두가 양계인 2세다"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농사는 사실 일도 어렵지만 비전과 돈이 없다고 느껴서 일까? 한국의 경우 농업인2세를 만나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KBS에 '세계는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장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대를 잇는 농업인 2세들'. 그래서 일본 출장에서 '대를 잇는 농업인'을 주제로 섭외를 했는데 어렵게 촬영한 것은 호접란을 생산하고 있는 농업인 2세다. 일본은 전통과 장인정신을 중시하고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나라가 아니라 쉽게 농업인2세를 찾을줄 기대했다. 웬걸? 일본의 경우도 농업은 어렵다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젊은이들의 도시선호 때문에 생각만큼은 쉽지 않았다. 이런 인식속에서 우리양계협회 소속 양계인2세들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짧게라도 우리 월간양계에 이름이라도 남기고 싶어 '다한'회원11명 모두를 소개한다.

이만형(62년생)은 길샘농장 대표이면서 다한을 이끄는 회장이다.

어른은 이상만(35년생)씨로 1970년경 서울 길동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월급5만원을 몽땅 털어서 구입한 병아리 2백마리가 현재 7만5천수 규모. 방에서 호롱불로 키우던 닭이 지금은 최신식 무창계사에서 알을 내고 있다.

이수인(칠성농장, 62년생)은 숭실대를 나왔지만 장자승계로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부친 이설재(34년생)씨는 지금은 은퇴했고 하남 황산에서 35년전 5백마리로 시작했다고 한다.

김재헌(65년생, 건업농장)의 경우는 부친(김성민, 작고)께서 제주도에서 농업을 하시다가 광주에서 시작한 경우다. 광주 건업리에서 1만수 규모로 1979년에 시작했는데 현재 월간양계 편집위원이다.

김재은(62년생, 대평농장) 사장은 아직도 부친(김명소, 30년생)의 도움을 받으며 양계를 한다. 다한에서는 1만3천수로 규모가 작은 편. 하지만 수익은 4-5만수 하는 사람 부럽지 않다. 직판으로 수익률을 높이고(계란1개당 20원이상 더 받는다) 계분도 부부가 일일이 만들어 포당 2천원씩 받고 주말농장에 팔기 때문이다.

주철림(62년생, 함일농장)은 3대째 양계를 하는 농가다. 할아버지가 함흥에서 몇백수 정도의 양계를 하시다가 부산피난 후 서울 답십리에서 아버지(주원술, 30년생)가 이어받고 아들은 1995년에 2만수를 이어받아 현재 12만군을 형성한 경우다.

정근수(65년생, 영생농장, 10만수)는 부친(정상호, 38년생)이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24살 어린나이에 3만5천수를 얼떨결에 물려받았다. 다한의 총무일을 맡고 있다.

이일형(74년생, 송오농장)은 다한의 막내다. 양계입문은 주위 형들의 권유도 있었고 외아들이다 보니까 현재 아버지(이상수, 47년생)를 도와 양계인의 길을 가고 있다. 광주에서 6천수로 출발해 현재 10배이상의 군을 형성하고 있다.

김용재(69년생, 갈미농장)는 충북 진천에서 1997년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무창계사 10만수로 출범한 기대주다. 8남매중에서 막내로 부친(김태수, 26년생)께 자청해 대를 이었다. 부친은 옛날 논농사가 주업이고 양계가 부업이었는데 양계가 돈벌이가 나은 듯해서 1만수로 시작했다.

오치성(이천농축원, 70년생)은 이천에서 1973년 5천수로 시작한 부친(오무남, 39년생, 작고)이 갑자기 운명하시면서 가업을 물려받았다. 늘 학교를 다니면서도 알바형태로 양계일을 해서 특별히 어려운일은 없다고 한다.

손승기(70년생, 대승농장)의 경우도 부친(손남희, 42년생)이 작고하면서 장남이기에 광주 초월에서 가업을 물려받은 경우다.

오기택(65년생, 영일농장)은 1958년 광주 번천리에서 3백수로 시작한 아버지(오근성, 30년생)와 함께 지금도 혹독한 양계수업을 받고 있는 동업자다.

이렇게 다한영농조합법인에 소속한 조합원은 11명. 좁은 지면에 어렵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이 10년후 우리양계업을 짊어지고 나갈 청출어람의 본보기이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늘 농장에 묻혀 살면서 이들은 '2050'브랜드로 백화점을 공략하고 자조금을 갹출해서 미래의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 사료도 월2,300t(70만수)규모로 공동구매해 생산비절감을 이루고 있다. 쉽지만은 않을터이지만 '다한' 양계2세들의 야무진 각오와 희망에 희망을 건다.

 

협회 전무 신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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